삼성반도체 사례로 본 역학조사와 산재보험의 문제점과 대안 공청회
직업성 암처럼 작업과 질병의 인과관계를 규명하는 데 오래 걸리는 질환에 대해서는 역학조사 완료 전에 산업재해보상을 통해 노동자들의 치료받을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공유정옥 산업의학 전문의(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는 4일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직업성 암 현황과 역학조사·산재보험 문제점 및 대안찾기’ 공청회에서 이같이 주장했다. 이날 공청회는 홍희덕 민주노동당 의원실과 김상희 민주당 의원실이 공동 주최하고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이 주관했다.
삼성반도체 역학조사, 뭐가 문제였나
지난해 12월 발표된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의 ‘반도체 제조공정 근로자 건강실태 역학조사’ 결과에 대해 공유정옥 전문의는 “집단역학조사를 실시한 직접적인 계기를 만든 피해 당사자와 추천 전문가의 참여 요구가 한번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공단이 최종 결론을 내리기 전에 공청회를 통해 의견수렴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 사업주가 제공한 자료에 대해 투명성을 확보하는 절차가 없어 은폐와 왜곡이 심각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역학조사의 목적이 보상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것이든, 예방책 마련이든 간에 ‘노동자 건강 보호’라는 상위 목표가 기업의 이윤 보호 때문에 훼손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산재신청을 낸 삼성반도체 5명 노동자들에 대한 개별역학조사의 문제점도 지적됐다. 그는 “쉽게 드러나지 않는 원인을 찾아내기 위한 조사가 아니라 알려진 발암물질의 존재를 확인하는 수준의 현장평가에 그쳤다”고 지적했다.
역학조사 개선방안은?
공유정옥 전문의가 제안한 역학조사 개선방안은 크게 5가지로 요약된다. 우선 피해 당사자의 알권리와 역학조사 과정에 참여할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산업안전보건법 시행규칙에 따르면 노동자대표의 요구가 있으면 역학조사에 입회할 수 있다. 하지만 노조가 없으면 노동자가 참여할 방법이 없다. 삼성반도체가 대표적인 사례였다. 이주노동자가 일하는 사업장도 마찬가지다. 이 밖에 알 권리를 제한하는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과 사업주 협조 없이는 역학조사 실행할 수 없는 상황이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대안으로는 △역학조사 수행 주체 확장 △인과관계의 규명이 오래 걸리는 질환은 역학조사 완료 전 산재보상 제공 △역학조사 후 해당·유사 사업장 노동조건 개선 등이 제시됐다.
보상받아도 진료비 많이 들어
두 번째 발제에 나선 이상윤 노동건강연대 정책국장은 제도적으로 직업성 암이 인정되기 어려운 구조와 높은 진료비 부담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이 국장에 따르면 산업안전보건공단은 발암물질 노출 여부와 노출량·잠복기·비직업성 암과의 차이 등을 고려해 업무관련성이 51% 이상의 확률을 가질 경우 직업 관련성을 인정하고 있다. 이 국장은 “이런 기준은 학문적으로 직업성 암 여부를 구분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될 수 있겠지만 보상 여부를 결정하는 기준으로는 너무 엄격한 것”이라고 말했다.
적지 않은 진료비도 문제다. 그는 “우리나라 산재보험은 현재 일부 항목을 제외하면 의료기관 요양기준이 건강보험 기준과 같다”며 “건강보험 환자와 산재보험 환자 간에 암 진료비 부담 차이는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암환자에 대한 건강보험 보장률은 2007년 현재 71.5%이지만 환자가 전적으로 부담하는 비급여 항목 비중이 여전히 높다.
예방 차원의 역학조사 필요
김은아 산업안전보건연구원 직업병연구센터 소장직무대행은 “역학조사를 하려면 질병에 대한 정보가 충분해야 하는데 국내에 암발생 통계 등 리소스가 충분하지 않다”며 “전체적인 제도 개선과 함께 극복돼야 할 역학조사의 한계”라고 말했다. 그는 “역학조사가 단순히 업무상질병 보상을 위해 활용되는 것보다는 장기적인 전망 속에서 예방 차원으로 발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우기영 근로복지공단 요양팀장은 “의학적으로 발병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경우 (직업성 질환으로) 인정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직업성 암 같은 질환에 대해 '선보장 후심의하자'는 제안에 대해서는 “보상할 수 있는 영역과 기준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힘들다”고 밝혔다.
피해는 고스란히 가족에게
삼성반도체에서 일하다 숨진 고 황민웅씨의 아내인 정애정씨는 “피해자 입장에서는 경제적인 문제가 가장 클 수밖에 없다”며 “백혈병의 경우 치료기간이 길수록 비급여 부분이 커져 고스란히 가족들의 경제적 부담이 된다”고 말했다. 고 황민웅씨의 경우 9개월 투병생활동안 들어간 비용이 약 5천만원가량으로 알려졌다. 골수이식을 했다면 2천만~3천만원의 비용이 더 들었을 것이라고 한다. 정애정씨는 “지난해 역학조사 보고서를 보니 정확한 판단을 위해서는 장기적인 추적관찰이 필요하다고 나와 있었다”며 “그렇다면 당사자와 가족들은 언제까지 그 피해를 갖고 가야 하는 것이냐”고 반문했다.
이날 공청회를 공동주최한 홍희덕 의원은 “정부가 많은 예산을 투입해도 산재가 줄지않는 이유는 기업의 돈벌이를 우선시하는 사회풍조 때문”이라며 “영업비밀을 내세워 화학물질을 공개하지 않는 기업들에 대해 개탄을 금할 수 없다”고 말했다. 김상희 의원은 “직업병의 업무관련성을 밝히기 위해 산재환자의 가족들이 고통속에서 애를 쓰고 있다”며 “홍희덕 의원과 함께 국회의원으로서 해야 할 역할에 충실하겠다”고 약속했다.
- 발암물질 실태조사 너무 부족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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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열린 공청회에서 곽현석 노동환경건강연구소 발암물질센터·감시네트워크 준비팀장은 발암물질에 대한 기초 실태조사가 너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직군별로 어떤 발암물질이 존재하는지, 기초적인 실태가 파악돼야 그 이후의 연구가 효과를 발휘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곽현석 팀장이 인용한 미국산업의학회지(2007) 자료에 따르면 직업적 사망의 가장 큰 원인은 암(32%)이었다. 다음은 순환계질환(26%)·업무중사고(17%)의 순이었다. 국제노동기구도 직업성 암으로 사망하는 인구를 60만명 이상으로 추산하고 있다. 국제암연구소는 150여종을, 미국국립독물학프로그램은 246종을 암을 일으키는 물질로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노동부가 지정하고 있는 발암물질 목록은 56종에 불과하다. 곽 팀장은 “그나마 업무상질병 인정기준에서 정하는 발암인자는 석면과 벤젠 등 7가지, 건강관리수첩 발급대상 발암물질은 11종뿐”이라며 “현실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노동환경건강연구소는 다음달 발암물질감시센터를 발족해 발암물질 수입·제조·유통·사용에 대한 정보를 생산하는 한편 노동자·시민들과 함께 대체물질 사용운동 캠페인을 벌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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