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안전공단 역학조사 믿을 수 없다”
피해자에게도 닫힌 역학조사, 사용자에게 면죄부
2년 전 3월 6일 삼성 반도체공장에서 일하던 23살의 여성 노동자 황유미 씨가 1년 반 동안 백혈병으로 투병하다 숨졌다. 그녀는 지난 2003년 19살에 삼성 반도체 기흥공장에 들어가 4년을 일했다.
죽음의 원인을 밝히려고 역학조사를 진행했지만 지난해 말 나온 결과는 “여성 노동자들의 백혈병 위험도가 일반인에 견줘 높지만, 통계적으로 유의미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피해 당사자도 참여할 수 없는 역학조사
한국산업안전공단이 지난해 12월 29일 발표한 ‘반도체 제조공정 근로자의 건강실태 역학조사’에선 반도체공장에서 일하는 여성이 백혈병으로 사망할 위험은 일반인의 1.48배였으며, 발병 위험은 1.31배에 이르렀다. 이 결과는 일반인구집단과 단순 비교한 것으로 실제 병에 노출될 가능성이 있는 집단과 비교하면 수치는 더욱 높을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이 역학조사에는 피해 당사자가 참여할 수도 없었다.
이 결과에서 백혈병과 비슷한 원인을 가지는 비호지킨림프종의 경우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는 여성은 일반인과 비교해 2.66배의 사망 위험성을 가졌으며, 발병 위험은 5.16배가 높았다. 이렇게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암을 발생시키는 위험물질이 있다는 것이 명확히 발견되었음에도 공단은 이를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김성희 민주당 의원과 홍희덕 민주노동당 의원이 주최하고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 주관해 4일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는 ‘직업성 암 현황과 역학조사, 산재보험 문제점 및 대안찾기’ 토론회가 열렸다.
근로조건 개선이 아니라 영업비밀이 우선인 역학조사제도
토론회에서 공유정옥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소장은 “당사자의 참여권이 박탈당하고 영업비밀이라는 이유로 사업주가 제대로 자료를 공개하지 않는 현재의 역학조사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이미 사망한 노동자의 과거 작업환경을 쫓아야 하는 상황에서 사용자 측이 당시 작업공간과 똑같은 조건을 공개하지 않아 조사 결과에 신뢰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자신의 공장에서 노동자가 사망했다고 하는데 사업주가 과연 사망원인이 있었던 공간을 그대로 공개하겠냐는 것이다. 사업주는 2천만원의 벌금만 내면 현장 공개에 협조하지 않아도 된다.
암의 경우는 한정된 발암물질 안에서 원인을 찾아내는 식이라 더욱 그 원인을 찾기가 어렵다.
공유정옥 소장은 제대로 된 역학조사를 위해 현재 노동조합이 없으면 역학조사 요청조차 할 수 없는 산업안전보건법의 한계를 지적하며 △피해 당사자의 참여 보장과 △현장 조사 시 사업주를 강제할 수 있는 근거 강화△역학조사 주체의 역량 보강 △선 산재보상 제공으로 치료받을 권리 보장 등이 필요함을 제시했다.
공유정옥 소장은 “역학조사제도는 직업병의 원인을 밝히는 데 그치지 않고 조사를 통해 확인한 직업병의 원인에 대해 해당 사업장 및 유사 사업장의 노동조건을 개선하는 데까지 이어 질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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